수술 후기

0) 오후 4시쯤 수술실에 들어간 것 같은데 병동에 돌아오니 7시였다. 수술 부위 이슈로 원래 병동으로 돌아오는게 아닌 중환자실로 갈 수도 있어 동의서 받아가셨는데 다행이었다.

0) 전신마취는 처음인데 심호흡 몇번에 바로 잠들었다. 깨고나서 보니 양쪽 손목에 주사바늘 5개 자국과 멍이 들어있었다.


1) 수술 한지 거의 한달이 됐는데 붓기가 아직 가라앉지 않고 있다.

2) 입을 다물지 못해 계속 벌리고 있는데 윗입술은 말라서 벗겨지고 고개를 조금만 숙여도 침을 옷과 바닥에 떨구게 된다. 애착 의자가 이렇게 오염되어 슬프다.

3) 음식을 씹기 힘들고 양치도 어려워 한끼정도 억지로 먹는다. 집에 굴러다니는 오래된 체중계(신뢰도 매우낮음) 상 8kg이 빠졌다. 배고픔에 먹방 유튜브로 대리만족하는데 효과가 있다!

4) 물을 처음엔 주사기에 넣어 쏴서 마셨는데, 3주차 정도부터는 요령이 생겨 조금씩 컵에 받아 입속으로 던진다.

5) 말을 하기 어려운데, 특히 입술을 붙혔다 떼서 발음해야 하는 ㅁ,ㅂ은 아예 못한다. ‘아빠 잠바 잘 어울리네요’를 ‘아하 잔하 자러울리레요’라하니 ???하신다. 답답하다.

6) 바깥 공기 마신게 언젠지 까마득하다.

세번째 도쿄 나들이

1) 10년 전 『언어의 정원』을 보고 장마철의 도쿄를 좋아하게 되었다.

2) 타이트 할 걸로 예상은 했지만, 집에서 새벽 5시에 출발해 오후 4시가 돼서야 신주쿠역에 발을 디뎠다.

3) 지난 여행에서 남은 현금 10,700엔을 챙겨갔지만 쓸 일이 없었다.

4) 라이카 긴자에서 복각 스틸림 렌즈를 샀다. 가격은 600,000엔(541만원)에 관세 42만 5천원.

주말 홍콩 찍먹기

1) 인정사정 없이 난사하는 레이저 쇼를 예상한 것과 다르게, 심포니 오브 라이트는 생각보다 정적이고 템포가 느렸다. 사실 언제 끝난지조차 모르겠다. 그래도 구경하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비가 오다말다해서 꼭 미스트필터로 보는 광경 같았다.

2) 구룡반도와 달리, 홍콩섬은 빌딩과 시설들이 종횡으로 거미줄 처럼 연결되어 한층 복잡하지만 동선이 짧아져 오히려 좋았다. 

3) 『중경상림』 속 명소라는 이유가 아니더라도,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이동수단으로써의 효용이 컸다.

4) 영국의 영향인지 차가 좌측차선으로 다니고, 횡단보도 대신에 이런 걸 만들어 놓았다.

5) 유명한 맛집들의 대기시간이 빠른 회전율과 합석 문화 덕에 길지 않아서 좋았다. 특히 나처럼 혼자면 거의 바로 입장이 가능했다. 그래도 대기줄이 한블록 이상되는 가게는 기다릴 엄두가 안났다.

6) 침사추이에 숙소를 잡았는데, 호텔에서 홍콩섬이 보이는 방을 배정해주었다. 오후2시로 늦은 퇴실도 처음으로 요청해 보았는데, 점심까지 밖에서 먹고 들어와 여유롭게 나올 수 있어서 좋았다.

7) 출발이 오전 8시 비행기라 전날 자정 쯤에 인천공항 출국장에 들어와 24시 라운지에서 쪽잠을 잤는데, 처음보는 불 꺼지고 문닫은 공항 내부 풍경과 생각보다 많은 환승인지 뭔지 모를 노숙 여행객들의 모습이 신기했다. 새벽5시쯤 되니 사람들로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활기찬 여행자들과 대조적으로 난 이미 눈이 풀리고 졸음이 쏟아졌다.

이스탄불 여행, 두서없는 단상들

1) 이스탄불! 언덕에 빽빽하게 들어선 주홍빛 지붕의 건물들, 이국적인 모습으로 서있는 모스크들, 보스포루스 해협을 따라 운행하는 페리들로 숨막히게 아름답다.

2) 거리에서 본 사람들의 생활상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는 사람들, 늦은 밤까지 술마시면서 노는 젊은이들, ‘헤어져’를 말하기 직전의 굳은 표정으로 다투는 연인, 잔디밭을 온몸으로 굴러도 여전히 신난 아이들, 석양을 바라보며 내 옆에서 정답게 케밥을 먹고있는 부부(유모차에 갓난아기가 있다.)

3) 누군가 '이제 천국의 영역에 들어왔다.'던 아야소피아는 생각보다 많은 디테일이 있어 흥미롭다. 그중에 압권은 모자이크 벽화였다. 한동안 넋 놓고 바라보았다. 없던 신앙심도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4) 갈라타 다리 위에서 보는 저녁 노을은 황홀하다.

5) 바다와 맞닿은 곳이면 어디든 낚시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6) 페리를 타면 시각적으로 새로운 각도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흐르는 땀과 열기를 선선한 바닷바람이 식혀주며 한껏 들뜬 승객들의 모습으로 즐겁다. 가격도 천원밖에 안한다.

    7) 거리에 현대 엑센트가 간간이 보인다. 경찰차(교통에 한함)는 현대 투싼이 많다. 아야소피아 경비에는 무려 벤틀리가 사용된다.

    8) 왕복 3차선? 도로가 있다. 가운데 차선이 아침에는 도심쪽 방향으로 저녁에는 외곽 방향으로 바뀌는 것 같다.

    9) 버스정류장의 기본적인 안내가 부실하다. 넘쳐나는 인파에 만차버스가 안서고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경우도 잦았다. 이렇게 되면 여행자는 낮선 장소에서의 기약 없는 기다림으로 시간의 개미지옥에 갇히게 된다.

    10) 인종차별을 하긴 하나보다. 꿀가게에서 만난 한국인 아가씨 얘기론 ‘칭쳉총’ 이라거나‘칭칭칭’이라는 단어가 그것이란다. 치안이 나쁘진 않지만 탁심 광장 주변엔 삐끼형들이 많다. 담배 물고 다가와 '라이터 있냐?'던 형은 같이 맥주 마시자며 꼬신다. (길만 물어보고 쿨하게 빠이빠이한 두바이형도 있긴 하다. 삐끼형들 때문에 괜스레 아무나 경계하게 된다.)

    11) 여기저기서 담배연기가 날아온다. 공공장소 금연이 제도적으로 시행되지 않는다. 형들이건 누나들이건 건물 밖이기만 하면 테라스, 벤치, 도로를 가리지 않으며 일단 앉으면 담배부터 꼬나무신다.(심지어 페리 위에서도 지붕없는 부분은 야외로 치나보다.) 길빵의 일상화다. 흡연자분들에겐 이보다 좋을 순 없겠으나 비흡연자인 나에겐 아름다운 석양도 눈에 안들어오게 만드는 매우 킹받는 일이었다.

    12) 인상적이었던 라마단 기간 해질녘 탁심 광장 풍경

    • 모스크 확성기에서 울려퍼지며 광장 전체를 가득 메우는 아잔(예배를 알리는 소리)
    • 하루종일 굶다가 모스크에서 나눠주는 죽과 생수를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
    • 단식을 마치고 죽 먹으랴, 장사 하랴 정신없는 식당 사장님들의 분주함(일몰 후 첫끼를 이프타르라고 함)
    • 제각기 늦은 저녁을 먹기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어수선함
    • 호텔 테라스에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바라보는 관광객의 즐거움

    13) 불타거나 무너져 보수가 필요한 건물들이 간간이 보였다. 숙자형님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밤 10시에 도로 한가운데서 장미 한송이 들고 앵벌이하던 유치원생쯤 되보이는 소녀와 미취학아동으로 보이는 동생. 가장 인상에 남은 건 어둠이 깔린 갈라타탑 근처 언덕에서 본 어떤 허리굽은 여인. 차도르를 입고 니캅을 쓴(눈만 드러난다.) 그녀는 길바닥에 앉아 고양이가 손댄 것 마냥 쓰레기통을 다 풀어 헤쳐 빵조각을 찾아 먹고 있었다.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너무 슬펐다.

    14) 거리에서 보이는 대다수의 남성들이 수염을 기른 반면에, 도시 곳곳에 붙어있는 정치인들의 포스터는 다들 면도를 한 모습이다!

    15) 호텔 두 곳을 거쳤다. 첫 호텔은 출국 전 예약을 했고 지내보고 좋으면 돌아갈 때까지 있으려 했다. 시설은 더할 나위 없었지만 문제는 다니기가 나빴다. 대중교통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언덕길을 15분 정도 올라가야 되는데 이게 불편함을 주었다. 밤에 호텔에 돌아올 때도 아픈 발을 겨우겨우 옮겼다. 두번째 호텔은 바로 근처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 나가고 돌아올 때 수월했다.

    16) 스타벅스와 맥도날드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 이스탄불 공공화장실은 입구가 지하철 개찰구같은 방식으로 카드를 찍게 되어있다.(들어가질 않아서 실제 돈을 내는지 확인 하진 못했다.) 글로벌 프렌차이즈들은 화장실이 개방되어 있고 청결한 편이어서 좋았다. 간김에 커피마시게 되는 건 덤.

    17) 세계 3대 스타벅스로 꼽힌다는 베벡 스타벅스. 그래서인지 좌석 곳곳에 초미녀 누나들이 인증샷 찍느라 다들 여념이 없었다.

    18) 이스탄불 현대미술관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세상 스타일 좋은 형님, 누님들은 다 여기 모여 계셨다. 공공시설이 이렇게 좋은 위치에 있는 것은 시민들에게 복이다. 해변가에 맞닿아 멋진 경치를 즐길 수 있는 곳은 대부분 호텔이라던가 상업구역이라 접근하려면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술관이나 도서관 특유의 한적함이 분위기에 한 몫 한다.

    19) 나의 여정 내내 갈라타탑의 조명은 켜지지않았다.(보수공사로 한동안 문닫는다.)

    사고가 났다. 고속도로에서.

    그 순간의 장면과 감각이 반복 재생 된다.

    친구와의 캠핑은 물거품이 되었고,

    그때부터 후처리의 지난한 작업들이 시작되었다.

    어찌 보면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내가 당사자가 되었다.


    그 불가피함에 화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