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여행, 두서없는 단상들

1) 이스탄불! 걸어다녀 보면 성남시 마냥 계란판 지형이지만, 원거리에서 보면 높은 산 없는 언덕에 빽빽하게 들어선 주홍빛 지붕의 건물들, 가장 이국적인 모습으로 서있는 모스크들, 그 사이에 펼쳐진 보스포러스 해협을 따라 운행하는 페리들로 숨막히게 아름답다.

2) 거리에서 본 사람들의 생활상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는 사람들, 늦은 밤까지 술마시면서 노는 젊은이들, ‘헤어져’를 말하기 직전의 굳은 표정으로 길가에 서있는 연인, 잔디밭을 온몸으로 굴러도 여전히 신난 아이들, 석양을 바라보며 내 옆에서 정답게 케밥을 먹고있는 부부(유모차에 갓난아기가 있다.)

3) 아야소피아는 생각보다 많은 디테일이 있어 즐겁다. 그중에 압권은 모자이크 벽화였다. 한동안 넋 놓고 바라보았다. 없던 신앙심도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4) 갈라타 다리 위에서 보는 저녁 노을은 황홀하다.

5) 바다와 맞닿은 곳이면 어디든 낚시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6) 이스탄불을 보석같은 도시로 만드는 것 중에 페리를 빼놓을 수 없다. 시각적으로 새로운 각도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흐르는 땀과 열기를 선선한 바닷바람이 식혀주며 한껏 들뜬 승객들의 모습으로 즐겁다. 가격도 천원밖에 안한다.

7) 페리를 타면 볼 수있는 광경 중에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갈매기들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이 있는데, 어떤 한 꼬마녀석이 갈매기가 빵조각을 집으러 다가오니 팔을 확 거둬들여 놀리며 씨익 웃는다. 갑자기 아이스크림 장수 생각이 났다. 이렇게 터키식 조크는 이어진다.

8) 스푸파에 나온 이스켄데르 케밥집 사장님의 조크(내가 그날 첫손님이었다.)

  1. 혼자왔니? 우린 두명이상만 들어올 수 있어!
  2. 시라 한 잔 더달라고?(3잔째) 취하는 거 아냐?(시라는 무알콜이다.)
  3. 온리 캐쉬!(계산해달라며 카드를 내밀자)

9) 튀르키예에서 현대차가 경쟁력이 있나보다. 거리에 현대 엑센트가 간간이 보인다. 또한 경찰차(교통에 한함)는 현대 투싼이 많다. 그리고 테슬라 모델Y도 많이 보이는데 특히 우리나라에는 없는 퀵 실버 색상은 희소성을 차치하더라도 멋졌다. 하지만 내 차를 포함해 그 외 모델은 한번도 못봤다. 마지막으로 아야소피아 경비에는 무려 벤틀리가 사용된다.

10) 교통카드인 이스탄불 카르트는 카드 하나로 여러번 찍는 방식으로 여러사람이 쓸 수 있더라.

11) 버스에 낑겨 올라 기사님 바로 옆에 서서 갈때 본 것인데 여기엔 가변차로가 있다. 예를 들면 양방향 3차선인데 가운데 차선이 아침에는 도심쪽 방향으로 저녁에는 외곽 방향으로 바뀌는 것 같다. 러시아워 교통 정체 해소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라마단 휴무 기간엔 이것도 큰 소용이 없더라.

12) 구글맵 덕분에 필요성이 매우 적어지긴 했으나 버스정류장의 기본적인 안내가 부실하다. 일단 (2024년 4월초 기준) 버스별 노선도가 표기된 정류장을 한 곳도 보질 못했다.(지하철과 트램은 노선도가 있음). 지도에 현위치와 정류장 위치를 표시 해놓긴 했지만 선으로 연결되어 있질 않아서 이 버스는 어딜가고 저 버스는 어딜가는 지 모르겠더라. 결국 버스의 LED표기를 봐야하는데 이게  쉽지 않았다. 또 하나는 도착시간 안내인데, 도심임에도 아무런 안내전광판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 이 정류장은 어느 버스가 정차하고 언제오는지 알기 어려웠다.(구글맵에선 바로 알수 있긴 함-데이터 안쓰는 여행자 한정) 하필 라마단 기간 중 여행이다 보니 넘쳐나는 인파에 만차버스가 정류장에 안서고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경우도 잦았다. 이렇게 되면 여행자는 낮선 장소에서의 기약 없는 기다림으로 시간의 개미지옥에 갇히게 된다.

13) 여기도 인종차별을 하긴 하나보다. 꿀가게에서 만난 한국인 아가씨한테 들은건데 ‘칭쳉총’ 이라거나‘칭칭칭’이라는 단어가 그것이란다. 나는 직접 들어보진 못했지만 내가 모르는 차별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받았을 가능 성도 있다. 치안이 나쁘진 않지만 삐끼형들이 많아 사기당하는 경우가 있다고 조심하라고 외교부에서 문자를 보낸다.

14) 여기저기서 담배연기가 날아온다. 공공장소 금연이 제도적으로 시행되지 않는다. 형들이건 누나들이건 건물 밖이기만 하면 테라스, 벤치, 도로를 가리지 않으며 일단 앉으면 담배부터 꼬나무신다.(심지어 페리 위에서도 지붕없는 부분은 야외로 치나보다.) 길빵의 일상화다. 흡연자분들에겐 이보다 좋을 순 없겠으나 비흡연자인 나에겐 아름다운 석양도 눈에 안들어오게 만드는 매우 킹받는 일이었다.

15) 인상적이었던 라마단 기간 해질녘 탁심 광장 풍경

  • 누가 부르는지 모를 노래(교회로 치면 반주없이 혼자부르는 찬송가 같은거겠지)가 탁심모스크 확성기에서 울려퍼지며 광장 전체를 가득 매우고 있다.
  • 하루종일 굶다가 모스크에서 나눠주는 죽과 생수를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
  • 광장 복판에 음식점들에선 단식을 마친 사장님이 죽을 드시며 햄버거 파느라 정신없어 보였고
  • 거리에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제각기 늦은 저녁을 먹기위해 어수선
  • 광장 바로 맞은편 호텔(우리나라로 치자면 서울광장의 플라자호텔이나 프레지던트호텔) 테라스에 나와 이 장면을 찍고 있는 사람들

16) 갈라타포트가 이름만 항구지 쇼핑하고 경치보고 밥먹는 곳인 줄 알았는데 실제 배를 댄다. 지금 ‘바이킹 마스’라는 엄청 크고 깔끔한 크루즈선이 정박해있다.

17) 도시 전체에 불타거나 무너진 건물 잔해들이 간간이 보였다. 특히나 관광객들이 많은 갈라타 다리 주변에서도 그렇고 호텔 주변에도 그렇고 열심히 걸어다니며 도시를 조망해보니 이스탄불은 돈 들어갈 데가 많아 보인다. 숙자형님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내 활동시간이 한정적이어서 그리 보였을 가능성이 높으며 공원에서 늦은아침까지 이불깔고 주무시는 형님 한분 봤다. 가장 인상에 남은 건 어둠이 깔린 갈라타탑 근처 언덕에서 본 어떤 허리굽은 여인이었다. 눈만 가리는 히잡을 쓰고 길바닥에 앉아있던 그녀는 고양이가 헤쳐놓은 것 마냥 쓰레기통을 다 뒤집어 헤쳐놓고 그 속에서 빵조각을 찾아 먹고 있었다.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너무 슬펐다. 

18) 거리에서 보이는 대다수의 남성들이 턱수염을 기른 반면에 재미있는 점은 도시 곳곳에 붙어있는 정치인들의 포스터를 보면 다들 면도를 한 모습이다!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이나 티비에서 보는 에르도안 대통령도 마찬가지! 상업 현수막은 정반대로 예를 들면 리바이스 청바지의 남자 모델은 수염이 덥수룩한 모습으로 리바이스 재킷과 바지를 입고있다. 매력이라는 공통 요소를 가지지만 표를 얻기위한 이미지와 돈을 쓰게하는 이미지 사이의 차이인가?

19) 티셔츠 몇벌 사려고 찾아보니 파타고니아도 무인양품도 심지어 유니클로도 없었다. 대신 MAVI라는 현지 브랜드가 디자인도 간결하고 가격도 저렴했다.

20) 호텔 두 곳을 거쳤다. 첫 호텔은 출국 전 예약을 했고 지내보고 좋으면 돌아갈때까지 있으려 했다.  시설은 더 없이 좋았지만 문제는 다니기가 나빴다. 대중교통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빈민가(?)스러운 언덕길을 15분 정도 올라가야 되는데 이게 여정에 불편함을 주었다. 밤에 호텔에 돌아올때도 아픈 발을 겨우겨우 옮겼다. 주변에도 호텔이 많았는데 다들 단체여행객으로 셔틀타고 이동하더라. 땅값 싼 위치에 호텔짓고 시설에 몰빵한 사업방식으로 보인다. 두번째 호텔은 바로 근처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 나가고 돌아올때 수월했다. 멤버십 덕분에 룸 업그레이드도 받아 잘 머물다 간다.

21) 스타벅스와 맥도날드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 이스탄불 공공화장실은 입구가 지하철 개찰구같은 방식으로 카드를 찍게 되어있다.(들어가질 않아서 실제 결제가 되는지 확인 하진 못했다.) 글로벌 프렌차이즈들은 화장실이 개방되어 있고 청결한 편이어서 좋았다. 간김에 커피마시게 되는 건 덤.

22) 세계 3대 스타벅스로 꼽힌다는 베벡 스타벅스. 그래서인지 좌석 곳곳에 초미녀 누나들이 인증샷 찍느라 다들 여념이 없었다. 여기서도 나는 이 누나 저 누나 구경하느라 닭대가리 마냥 돌아가는 머리가 쉬질 않았다.(어휴 이런 개진상..)

23) 이스탄불 현대미술관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세상 스타일 좋고 예쁘신 엘프 누님들은 다 여기 모여 계셨다. 이스탄불 현대미술관은 여행 마지막 3일을 내내 여기서 보내며 이 이야기를 쓸 수 있게끔 해주었다. 공공시설이 이렇게 좋은 위치에 있는 것은 시민들에게 복이다. 해변가에 맞닿아 멋진 경치를 즐길 수 있는 곳은 대부분 호텔이라던가 상업구역으로 되있어서 접근하려면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을 관광보다 휴양에 더 비중을 두고 해변에서 경치만 즐기다 와도 좋겠다고 떠나오기 전 생각했는데 이 시설을 알게되어 다행이었다.

24) 나의 여정 내내 갈라타탑의 조명은 켜지지않았다.(보수공사로 한동안 문닫는다.)

25) 백수 시절 읽었던, 지금은 돌아가신 신영복 교수님의 [더불어숲]이라는 책이 있다. 교수님이 신문에 연재했던 칼럼을 모은 여행기인데, 독자들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도시의 역사적 사건들과 현재의 감상을 교차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게다가 여행기라는 장르는 왠만해선 재미없을 수가 없다.) 다녀와서 다시 보니 아야소피아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오스만의 종교적 관용에 대해서 쓰셨는데 읽으며 공감을 했다. 교수님이 다녀오신 길을 따라 가보는 것도 멋질 것 같다.

사고가 났다. 고속도로에서.

그 순간의 장면과 감각이 반복 재생 된다.

친구와의 캠핑은 물거품이 되었고,

그때부터 후처리의 지난한 작업들이 시작되었다.

어찌 보면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내가 당사자가 되었다.


그 불가피함에 화가 난다.